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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당 창당대회 모두발언(24. 1. 27.)

작성일자
2024.01.27. 22:57
광주광역시당 창당대회 모두발언


○ 일시 : 2024년 1월 27일(토) 오후 2시

○ 장소 : 김대중컨벤션센터 3층(광주 서구 상무누리로 30)

■ 이석현 공동창당준비위원장

 좀 전에 우리 정남준 위원장님 목소리도 걸걸하시고 정말 큰일 한번 해낼 분 같죠? 광주시당 잘 이끌어주시라고 박수 한 번 더 크게 쳐주십시오. 우리 이낙연 위원장님은 이 대회장마다 가면은 저보고 먼저 이렇게 연설하라고 밀어내요. 제가 아주 민망합니다. 사실 이렇게 양보와 배려 품격의 신사 정치인 이낙연 위원장이 요즘 고생 많습니다. 힘내라고 큰 박수 한번 주십시오. 사실은 제가 연설할 때마다 미안한 게 두 분 공동위원장입니다. 우리 당에는 보석 같은 두 분이 계십니다. 한 분은 서효영 공동위원장, 한 분은 신정현 공동위원장 두 분 자리에서 잠시 좀 일어나주십시오. 서효영 공동위원장님은 국제변호사십니다. 이번에 우리 당원 만드는데 아까 계신 장덕천 위원장님과 함께 당원을 다 만들었어요. 또 우리 신정현 공동위원장님은 그 이재명 경기도지사한테 도의원을 하면서 어찌나 바른말을 많이 했는지 미움을 샀어요. 정의감 있는 우리 신정현 서효영 두 분 큰일 하라고 격려 박수 한 번 더 해주세요. 제가 두 분의 뜻을 모아서 대리로 연설을 하겠습니다.

요즘 우리 정말 서민 살림이 너무 힘듭니다. 지금 가계부채 우리 국민 1978만 명이 지금 가계부채를 짊어지고 삽니다. 그중에서도 448만 명은 세 군데 이상에서 빚을 얻어서 더는 어디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없는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또 자기가 버는 한 달 수입의 60% 이상을 대출 이자로 내야 하는 사람들이 400만 명이 넘습니다. 월급 100만 원 받으면 60만 원을 갚았다가 이자를 내야 합니다. 얼마나 형편이 어렵습니까? 지금 전기세, 소득세, 공공요금 다 올라가고 소비자 물가 올라갔습니다. 장 보러 가는 주부들이 신이 나고 흥이 나야 하는데 장 보러 가기에 겁이 나는 그런 소비자 물가가 됐습니다. 지금 이런 판에 지난 1년 동안에 정말로 참담하게도 일가족이 한 가족이 다 집단 자살한 수가 아홉 집이나 됩니다.

세상에 국민 생활이 이렇게 피폐하고 힘든데 지금 윤석열 대통령 하는 걸 보십시오. 오만과 독단, 부패와 무능, 허구한 날 검찰 공화국만 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충언을 하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명품 가방만 받습니다. 또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 보십시오. 허구한 날 어제도 방탄, 오늘도 방탄, 내일도 방탄, 방탄으로 날이 샙니다. 사법 리스크, 도덕성 부재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 못합니다. 검찰 앞에 가면 작아지는 사람들입니다. 허구한 날 거대 양당이 서로 싸움질이나 하고 극단적인 대립으로 혐오 정치만 일깨우고 일으키고 있어요. 우리 국민들은 민생은 저 사람들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체 국민의 3분의 1이 지금 이 당도 싫고 저 당도 싫다 우리는 정치는 싫다 고개 돌린 분들입니다. 우리는 이분들에게 정치에 관한 관심을 일으키고 희망을 주고, 우리 국민에게 행복한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신당을 만들려고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가 광주 땅입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의거 저 일제 식민지 노예교육에 저항해서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서 전국에 학생 운동에 불을 질렀던 그 역사가 일어났던 바로 그 땅 광주 땅이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 민족의 정기가 살아있고 연면히 내려오고 있는 독립의 정신이 있는 곳입니다. 또 1980년 5월 18일 전두환 총칼과 탱크부대 앞에서 육탄으로 저지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민주열사의 피가 스며든 땅이 광주 땅입니다. 민주의 성지인 광주에서 이제는 새 정치의 성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저 부패한 정치 구태정치, 어제 엊그제도 보십시오. 전주에서는 우리 이낙연 대표가 콩나물국밥집에 와서 큰 환대를 받고 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냉대를 받고 쫓겨났다고 거짓 뉴스를 퍼뜨리고 그날로 바로 수많은 유튜버들이 사실인 양 보도하고 이렇게 저주와 음모·모함·모략으로 날을 새는 이런 구태정치 이제 제발 좀 청산하고 참신한 새로운 정치 한번 우리 해봅시다. 여러분, 저는 이 광주가, 이 광주 민주의 성지가 이 새 정치의 성주가 되기를 정말로 기대합니다.

여러분 제가 옛날에 젊었을 때 김대중 대통령님 비서를 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전두환 때 사형 선고를 받고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했던 1985년에 30대 나이에 제가 비서로 들어갔습니다. 저를 아들처럼 여기셨어요. 실제로 둘째 아들 김홍걸 씨하고 제가 동갑입니다. 저한테 늘 하시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 동지 세상에 높은 사람이 되려면 끝도 없네. 무엇이,사람에게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네. 이런 말씀을 하면서 자기 양심에 떳떳하게 사는 사람이 가장 성공한 사람이다. 이런 말씀을 저한테 해주셨습니다. 제가 민주당에 눌러앉아서 이재명 대표한테 듣기 좋은 소리나 좀 하면서 공천받아서 7선 의원이 되었다면 국회의장 0순위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김대중 선생님의 그 구구절절 말씀이 가슴에 사무쳐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지난달 12월 29일에 민주당을 탈당하고 이낙연 대표와 함께 지금 여러분 앞에 지금 서 있습니다. 여러분, 김대중 총재께서는 이낙연 동아일보 기자를 엄청나게 사랑하셨습니다. 제가 어느 날 물어봤어요. 선생님 그때는 우리가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요. 선생님 왜 유난히 이낙연 기자한테만 그렇게 말씀을 많이 해 주십니까? 제가 그랬더니 저한테 그래요. 이 사람아 이낙연 기자는 사실을 사실대로 쓰는 사람이네. 요즘 어느 기자들이 다 왜곡하지 사실대로 쓰는가 이렇게 말씀을 그 시대에 언론 탄압이 심하던 때 어느 날 이용희 부총재가 저한테 말씀했어요. 이낙연 기자 그 사람 대단한 사람이네, 주머니에 사표를 써서 넣고 다니더구먼. 이렇게 용기 있게 총론을 펼쳤던 이낙연이 지금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새해 초에 권노갑 고문님께 새해 인사를 갔습니다. 고문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제 손을 꼭 붙들고 내가 광주·전남을 여러 번 다니면서 원로들을 다 만났는데 지금 민주당은 민주당이 아니라고 하네. 지금 민주당에는 민주가 없습니다. 김대중 정신도 없습니다. 당사에 가보면 김대중·노무현 사진만 덩그러니 걸려 있습니다. 김대중 정신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화해와 포용의 정신입니다. 그렇지만 한마디만 한 말을 반대하면 미워하고 찍어내죠, 배타적으로 이게 지금 민주당 현실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 김종민 지금 미래대연합공동위원장 여기 오셔서 얼마나 감사하고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김종민 의원이 왜 민주당을 탈당해야만 했겠습니까? 바로 그러한 찍어내기, 대화와 타협이 없이,화해도 없이 그렇게 자기 사람 아니면 미워하는 1인 집권 체제의 정당이 민주당이기 때문에 김종민 의원이 탈당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민주당이 지금 껍데기입니다. 우리 정통 민주당의 본류는 바로 여기 있는 우리입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정신 김대중 정신을 가지고 있는 알맹이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분류이고 정통 계승자입니다. 지금 민주당은 껍데기 사진만 갖다 놓는 사진관 같은 그런 허울 좋은 정당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자부심을 품어야 합니다.요즘 헛소리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우리 전남 지역에 어떤 분도 차마 입에 못 다물 말씀을 하세요. 옛날에 안철수하고 국민의당 할 때는 안철수가 제2의 D.J다 하시더니 이제는 민주당에 복당하시더니 이재명이 제2의 D.J다. 아니 D.J보다 낫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세상에 어떻게 김대중 대통령님을 갖다가 그런 사람들한테 갖다 댑니까? 제가 비서로 모셨던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너무 분노했습니다. 그렇게 공천장 한 장에다가 김대중이라는 큰 이름을 갖다 팔아먹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앞으로 몇 살까지 사는지 모르지만 80 먹고 90 먹어도 절대로 그런 부끄러운 일은 않겠다는 걸 여러분 앞에서 서약합니다. 동지들이 걱정들 없습니다.

지금 우리 실은 호남에서 우리 당의, 새로운미래 지지도가 의미 있는 변화로 지금 빠르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어제 여론조사 보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미흡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우리 희망을 품읍시다. 저는 이낙연에 대한 호남 민심은 어머니 마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새로운 길을 찾아서 집을 나서겠다 하면 대부분 말립니다. 얘야 그 위험한 길 가지 마라. 집에 편안히 있어라. 말립니다. 그렇지만 막상 행장을 차려서 집을 나설 때는 음식 보따리를 챙겨주는 것이 어머니 마음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창당을 하네 안 하네 했고 이제 발기인들이 내고 겨우 했습니다마는 다음 달에 창당하고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하면 우리 호남 민심이 열화와 같이 일어나서 어머니 마음으로 이제는 우리 이 새로운미래 신당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리라고 저는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광주·전남 국회의원들 일 좀 제대로 해야 합니다.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름도 잘 모르겠어요. 왜 그렇겠습니까? 일하는 국회의원들을 뽑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그러냐면 여기서 국민의힘은 찍을 수가 없고 내놓는 것이 민주당 후보 하나뿐입니다. 찍으려면 찍고 말라면 말라는 식입니다. 실질적인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신당이 만들어져서 신당 후보도 나오고 또 민주당 후보도 나오면 여러분들이 봐서 누가 더 잘하겠는가 봐서 선택해서 찍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뽑힌 의원이어야만 유권자 두려운 줄 압니다. 지금까지는 공천장이 바로 당선증이었기 때문에 공천해주는 당 대표가 더 두려웠던 것입니다. 한마디도 못 하고 그래서 호남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았습니다. 이제 신당이 생겨서 선택권이 주어지고 여러분이 골라서 뽑으시게 되면 그때 뽑히는 국회의원들은 당 대표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유권자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유권자죠. 그래서 신당이 특히 호남지역에서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말씀을 좀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힘든 일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가시밭길이 놓여 있습니다. 꽃길이 아닙니다. 이 가시밭길을 우리가 서로 어깨 걸고 함께 뭉쳐서 하나로 걸으면서 이 고통을 참고 이기면서 어떠한 고난도 헤쳐나가면서 4월 1일 총선에서 이 광주, 전남 호남 전국에서 우리 신당이 대승을 거둘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뭉치자는 말씀으로 말씀을 갈음합니다. 고맙습니다.

■ 이낙연 인재위원장

김종민 의원이 6·25 이후라 그러면 조금 거짓말이고 김대중 대통령 이후에 제일 잘한 연설입니다. 김종민 의원 연설 듣다가 저 비슷하게 해서는 이길 수 없겠다고 생각해서 연설 방향을 갑자기 바꿨어요. 제 개인적인 얘기를 여러분께 고백하고자 합니다. 어머니 생각이 났어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어머니가 연세 드실수록 어쩌다가 어머니한테 인사드리러 갈 때 그 느끼는 심정이 있어요. 어째서 저렇게 자꾸 작아지실까? 그 모든 일 다 하시던 분인데 어째서 기운이 저렇게 없으실까? 그러고 아들이라는 놈이 더 잘해야 했는데, 하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고향에 와도 어머니도 안 계시고 아버지는 훨씬 더 먼저 떠나시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안 계시는 그 고향 올 때 느낌이 꼭 어머니한테 올 때 그때 느낌하고 비슷해요. 어째 광주·전남은 자꾸 힘이 빠질까, 어째 내가 더 잘하지 못할까, 내 불효를 우리 고향은 용서해 줄까 늘 그런 심정이 듭니다.

저는 여러 차례 말씀드리지만, 저희 아버지가 평생 민주당 당원이었고 저도 24년 동안 민주당 당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20대부터 71살로 돌아가실 때까지 민주당 당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2000년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민주당 당원입니다. 저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저는 어떻게 만들어진 사람인가, 저희 아버지와 제 얘기를 통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40년 넘게 민주당 당원이었지만 여당 생활은 딱 1년밖에 못 했습니다. 4.19부터 5.16까지. 저는 24년이지만 절반 정도씩 여당과 야당으로 지냈어요. 여당으로 지냈던 그 4.19 직후 저희 아버지한테 제가 그 겪었던 얘기를 해드릴게요. 4.19 당시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어느 날 학교 갔다 왔는데 집에서 울음소리가 나요. 할머니도 밭일 나가고 아버지도 밭일 나가고 동생들은 다 어디 들판에 갔는지 집이 텅텅 비었어요. 집 안에서 남자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울음소리 나는 곳을 찾아봤어요. 상추 대가 뻣뻣하게 선 계절입니다. 잎사귀 따서 놓은 자리에 허연 뜨물이 내리는 그런 때입니다. 아마도 초여름 이때였겠죠. 저희 아버지가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크시거든요. 지금 제 키가 아버지 키입니다. 그런데 저보다 훨씬 더 어깨가 넓으시고 제가 처음 국회의원 출마했을 때 여기저기 인사 댕기는데 그 일대 할머니들이 저보고 하는 말씀이 에이 애비만 못하다, 그 정도로 아버지가 풍채가 좋았어요. 그런 분이 상추밭에 엎드려서 울고 계시는 거예요. 제가 3학년밖에 안 되지만 큰아들이라 그런지 좀 철이 들었는지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어요. 아버지 어째 이런다오 울지 말랑게라 그만 울랑게라, 그래도 울다가 울음을 그치셨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해준 이야기가 이것입니다. 그 당시에 아버지가 모시던 국회의원이 여당 국회의원이 됐어요. 당시에는 여당 국회의원이 면장도 마음대로 하고 조합장도 마음대로 정하던 시대입니다. 아버지가 모시던 조영규 의원이라는 분이 우리 아시는 분들 아실 거예요. 조기상 의원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부르더니 이러더래요. 이 동지 이력서 한 장만 써와, 어쩌라?, 자네가 법성면 조합장을 서라, 제가 태어난 곳이 영광군 법성면입니다. 그 아버지가 뭔 일인지도 모르고 문방구에 가서 이력서 용지를 사다가 쓰려고 하였는데 쓸 것이 없어요. 출생 그 다음이 없어요. 뭔 학교를 입학해 봤어야 쓰지 저희 아버지 인생은 출생하고 사망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이력서 용지를 찢어버리고 의원님한테 가서 의원님 나는 자격이 없소 딴 사람 시키시오 하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나더라, 너는 가르쳐야 쓰겄다, 그것이 오늘의 제가 있게 한 시작이었습니다. 그 아버지 덕분에 중학교부터 광주로 나와서 또 좋은 학교 가고 또 좋은 대학 나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만나서 지금까지 저한테 털리고 있는 사람이 에덴병원 허정 원장입니다. 제가 저 친구한테 꼭 그렇게 말해요. 어이 자네 다음 세상에 또 태어나면 정치인 친구 두지 말고 차라리 노상강도를 한 번 만나라, 노상강도한테는 한 번만 털리면 되는데, 정치인 친구한테는 등을 평생 털리네, 그리고 성장해서 24년간 민주당에 있으면서 5선 국회의원, 도지사, 국무총리, 당 대표를 했습니다. 이력서에 쓸 것이 없어서 조합장 기재도 못 했던 그 농부의 아들이 국무총리에 당 대표까지 했으니까 누릴 만큼 누렸지요? 누구는 물어봐요. 아버지가 평생을 바쳤던 그 민주당 24년을 지냈던 그 민주당을 버리는 게 말이 되느냐? 저도 괴로웠지요.

그동안에 민주당 참 열심히 지켰습니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졌을 때 제가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사를 써드린 사람인데 그쪽에 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았습니다. 그게 2003년입니다. 그리고 2016년 안철수 씨의 국민의당이 생겨서 호남 일대가 완전히 녹색으로 물들 때 그때도 저는 꿈쩍도 하지 않고 민주당을 지켰고 도지사로서 저와 함께 일했던 시장, 군수 그 누구도 흔들리지 않게 제가 막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번에 민주당을 떠나니까 네가 변한 것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래요? 저는 말합니다. 변한 게 아닙니다. 왜? 열린우리당에 가지 않았던 것도, 국민의당의 바람이 불 때 흔들리지 않았던 것도 민주당의 정신과 가치를 나라도 지켜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던 거고, 이번에 제가 민주당을 떠났던 것은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민주당을 나왔습니다. 반대로 된 것이 아니라 저는 지킬 걸 계속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의 민주당은 민주당의 정신과 가치를 잃어버리고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 사진만 붙여놓은 그런 곳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사진관이 됐습니다.

4.19 후에 우리 아버지한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그거 되게 자랑했어요. 민주당 전남도당대회가 열렸는데 어쩌다 여당이 되다 보니까 아주 거창했대요. 서울에서 아주 거물들이 잔뜩 와서 광주에서 도당대회를 했는데 다 끝난 뒤에 동지들 할 말 있으면 하시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계급이 없는 사람이라 맨 뒷줄에 섰다가 나 할 말 있소 하고 손을 들었데요. 말하시오. 내가 이제까지 민주당을 지킨 것은 민주당이 옳았기 때문이오. 그런데 여당 됐다고 틀린 길을 가면 나는 다시 야당으로 갈랍니다, 그렇게 했대요. 요즘 제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민주당이 야당을 오래 하다가 여당 잠깐 됐는데 그래도 민주당이 잘못 가는, 잘못된 길을 간다면 나는 다시 야당 간다고 한 그 아버지의 아들다운 선택을 이번에 제가 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누구는 말합니다. 민주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국회의원 5선에 도지사·총리·당 대표 다 누린 사람이 어떻게 떠날 수 있냐?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국가로부터 또 당으로부터 혜택을 받을 만큼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국가와 국민께 그걸 갚아드리기 위해서 이 길에 나섰다 이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다닌 광주일고 교정에는 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이 있습니다. 그 기념탑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제 평생 가슴에 간직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 길이 바른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 길에 나섰습니다. 대한민국과 민주당이 분명히 잘못 가고 있는데 그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아무 소리 않고 묵인해 준다면 그것은 당과 국가로부터 혜택받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저는 이 길에 나섰습니다. 제 한 몸 던져서라도 대한민국이 더 이상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민주당이 더 이상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바로잡기 위해서 저는 이 길에 나섰다는 이 말씀을 여러분께 드립니다. 왜 신당인가 우리 김종민 의원, 이석현 의원 말씀드린 바와 똑같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은 윤석열 정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야당이 잘못된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고 3년 뒤에는 정권을 되찾아와야 한다, 이렇게 믿고 계십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계속 잘못하고 있고 민주당은 정권 심판도, 3년 뒤 정권교체도 이룰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대안을 광주에서부터 찾아야겠다, 이렇게 저는 믿기 때문에 여러분께 지지를 호소드리는 것입니다. 제게 힘이 남아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쏟아서 우리 호남과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우다 가겠습니다. 제가 가려는 길이 꽃길이 아닙니다. 추운 줄 알았지만 나와보니까 더 춥습니다. 그래도 이 길이 옳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가야 한다고 믿어서 이 길에 나섰다는 이 말씀을 여러분께 드립니다. 잘할 것입니다. 광주·전남 시·도민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모든 힘을 다 바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다짐의 말씀을 여러분께 드립니다. 한 번도 정당 생활을 해보지 않았는데도 저희들의 간청을 받아주신 정남준 시당위원장께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의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당을 만들기 위해서 애써주신 정찬용, 나훈, 우리 조정래 그리고 박종순 동지들 모두 고맙습니다. 그리고 특히 다들 소개했지만, 머리 허연 양반이 마이크 들고 막 심부름하시는데 저분이 대학교수십니다. 이병용 교수께 여러분 박수 좀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전주로 출발할 시간이 돼서 제 연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